특징
연락을 안 한 지 오래인 어머니와 여동생이 있고, 성인이 되자마자 빈손으로 상경해 갖가지 알바를 병행하며 대학 생활을 마쳤다는 이야기는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흔하디흔한 일화였다. 제대 후 대학을 졸업한 뒤로 누구나 그러하듯 단 한 번도 쉬지 않으며 병원과 소방서를 오갔다. 인제 와서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가파른 곳을 오르려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응급구조를 업으로 삼게 된 것도 어렴풋이 부모님의 영향이구나 가늠하는 것이 전부다. 언젠가 숨이 너무 모자란 날이 오면, 그때는 미련 없이 이 길을 벗어나자. 그런 생각을 할 뿐이다.
신은 물론이요, 귀신이나 외계인, 으스스한 도시 괴담 따위의 미신은 눈곱만치도 믿지 않고 있다. 불타오른 채 바스러져 가는 영혼이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다.
잠에 들지 못하는 일은 줄어들었으나 몇 시간이고 눈을 감고 있어도 해소되지 않는 피로에 힘겨워했다. 악몽은커녕 꿈도 없이 긴 밤을 지워냈지만 여전히 몸이 무거웠다. 추측하건대, 때때로 보이는 잔해 때문이리라. 혹은 그저 무궁한 겨울 탓일 수도 있을 테고.
추위에 약한 탓에 주로 겨울에 고생을 많이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다소 힘겨워 보였다. 부족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한 탓인지 밑도 끝도 없이 주워 먹었으나 남용해서야 금세 굶주리고 말 시기가 도래하고 나서는 극단적으로 입이 짧아졌다.
몇년 전 사고로 목부터 어깨, 허리까지 넓게 퍼진 전신 화상을 입었다. 종사자들이 으레 그렇듯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를 겪고 있는데 그 일종으로 정신적인 문제인지 통증에 다소 둔감해진 모습을 보였다. 일상에서 생기는 잔 상처를 방치하고 관리하지 못하다가 흉으로 남기도 했고 얼굴이 그어질 적은 사고 직후인 탓인지 거진 통증을 느끼지 못해 꽤 담담하게 반응했다. 상담이나 재활을 받아며 어느정도 감각을 되찾을 수 있지만 피로함이 누적되면 그마저도 사라져버리는 듯했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는 자신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없는 때인 새벽. 무감해진 이후로 기록하는 것을 버릇 들였는데 주로 한가한 시간을 이용한다. 보이고 들리며 겪은 것을 적어내리고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일을 연습하고 있다.
바이러스 사태 발발 직후, 아수라장이 된 병원에서 챙길 수 있는 것들을 온통 가방에 쓸어담았다. 제법 많은 양의 치료용품들을 손에 넣었으나 유성 백화점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사람들을 도운 것으로 대부분을 소모했다. 그나마 있는 것이라고는 주사기와 진통제뿐. 가지고 다니는 비상용 손도끼 손잡이에는 미끄러지지 않도록 붕대를 묶어두었다.